










박완서가 문학은 인간에 대해 쓰고 인간 본질을 탐구하는 작업이라고 했다. 그리고 그 '인간'의 범주에 여자를 넣으려고 했던 게 그이다. 그렇다면 박완서에게 여자란 무엇인가.
미군 부대 옆에서 낙태로 돈을 버는 여자 의사, 낙태 시술을 받는 여자, 성병 걸린 여자, 몸 파는 여자, 포주 마담, 강간당한 여자, 강간당해서 임신한 여자. 그 모두가 '여자'고 또한 '사람'이라고 말하는 것이다. 이런 사람을 문학으로 다룬다는 건 그런 뜻이다. (기존 남성 작가의 '문학' 속 여자들을 생각해보자. 그들은 장치로 후경화되어 있다. 다시 말해서 이렇게 구체적으로 씹스럽지 않다는 거다.)
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분명히 있다. 이 현실에 나와 같은 사람으로 존재한다.
솔직히 이 내용이 끔찍하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다. 그런데도 박완서는 그 끔찍스러운 사람들을 '사람으로' 불러온다. 이런 사람이 이 세상에 충분히 있다. 이 글보다 더 심각한 상태일지도 모른다. 그런데도 그들을 사람으로 부르려는 노력. 그게 박완서에게 문학이지 않은가? 너무 사실적이라고? 이 세상에 너무 사실적인 이야기는 없다. 그것이 이야기인 한. 거리로 눈을 돌리면 흔하게 마주칠 수 있는 이들을 활자로 옮겨 서사화한다는 건 그들이 사람이라고 주장하고 싶어서다.
단순히 소재로 글을 가려 읽는다고 한다면 이 소설은 걸러질 운명이다. 그러나 이 소설이 존재하는 것처럼, 종이 위에 글자가 찍힌 것처럼, 이렇게-혹은 더 개탄스러운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분명히 있다. 그걸 놓쳐서는 안 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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